주민자치 대안으로 주목받는 추첨선발제’ 제주서 도입

자치단체 하부조직 전락한 주민자치위 개혁 절실
추첨제가 기회 평등 측면에서 민주적 제도
대표성과 권한 확보라면 ‘마을정부’ 가능


[고양신문] 바야흐로 주민자치 시대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몇몇 지자체에서 선도적으로 시행했던 주민자치 실험들은 이제 국가차원의 주요 정책방향이 됐다. 이러한 흐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발표된 주민센터 공공서비스 혁신플랫폼 사업. 앞으로는 주민들이 직접 정책과 예산을 결정하고 주민센터는 이러한 정책과 공공서비스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와 함께 주민들의 대표기구인 주민자치위원회를 새롭게 개편·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읍·면·동장이 위촉하는 방식인 현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권한도 미약해 사실상 행정의 하부기관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위의 대표성 확보를 위한 제도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제주주민자치포럼은 혁신적인 실험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국 최초로 조례개정을 통해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한 것. 이어 올해 서울시 4개 자치구에서도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 도입을 준비한다고 밝혀 추첨제가 주민자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장들이 위촉한 현 주민자치위원들은 주민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어 추첨선발제를 비롯한 제도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고양시 일산동구 주민자치위원들이 지난 4월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계획사업’ 강의를 듣는 모습.


주민추첨 통해 대표성 강화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는 말 그대로 주민자치 위원들을 추첨을 통해 선발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주민자치활성화 차원에서 98년부터 읍·면·동별로 주민자치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2012년부터는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개편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전국 49개 읍·면·동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다. 이상적인 그림대로라면 주민자치회는 일종의 주민의회로서 마을계획을 수립·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나의 마을정부 노릇을 하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민자치위원회·주민자치회가 실제로는 대다수 주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주민자치위원 선정의 민주성·투명성·공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해 주민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는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됐다. 이 제도를 제안한 신용인 제주대 교수는 “주민자치위원 추첨제는 해당지역 주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민자치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가장 민주적인 제도”라며 “선거제도까지 도입하기에는 행정비용 등 현실적 한계가 있는 만큼 추첨제 도입이 최선의 방안”이라면 제안이유를 밝혔다.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라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조례개정 통해 추첨제 도입한 제주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는 작년 7월 조례개정을 통해 제주지역 43개 읍·면·동에 처음 도입됐다. 15명 이상 35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당연직으로 위촉되는 읍·면·동 이장협의회·통장협의회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을 지원자 중 추첨으로 뽑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단 주민자치위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학교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선출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일부 비판에 대한 보완책인 셈이다.

혹여나 주민자치위원에 대한 지원율이 저조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에 대해 신용인 교수는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모집인원을 상회하는 주민들이 지원했다”면서 추첨제 도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올해부터는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신 교수는 “추첨제 도입과 함께 주민자치위원회의 권한강화에 대한 내용도 조례개정에 포함시켰지만 이 부분은 도의회 논의과정에서 삭제됐다”고 아쉬워했다.

제주도의 추첨선발제 실험이 주목을 받자 서울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 들어 주민자치회 시범실시지역으로 선정된 금천구, 도봉구, 성동구, 성북구 4개 자치구에게 주민자치학교 이수를 조건으로 주민자치위원 정원의 60%는 공개모집 후 추첨으로, 나머지 40%는 단체추천 후 추첨으로 선발하는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권유했다. 이에 성동구는 지난 7월 13일 조례 개정을 통해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했고, 금천구, 도봉구, 성북구도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추첨을 통해 구성된 주민자치위원회가 실질적인 주민대표기구로서 마을계획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진전된 부분이다.


주민들이 뽑는 동장도 충분히 가능

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나아가 ‘마을공화국’ 수준의 자치권을 행사한다는 구상은 비단 신용인 교수 혼자만의 상상이 아니다. 지난 11일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은 문재인표 첫 번째 사회혁신으로 ‘내 삶을 바꾸는 공공서비스 플랫폼’이라는 구상을 발표했다. “기존의 주민센터를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공서비스 플랫폼으로 혁신한다”는 내용으로 “주민자치 확대를 통한 국정참여 실질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역의 읍·면·동으로 이전하는 지방분권의 필요성, 민관이 협력하는 지역 복지 생태계의 구축 필요성이 추진배경”이라고 밝혔다. 즉 국가 주도의 일방정책에서 주민 주도형 정책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공모를 통해 읍·면·동장을 선발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동장자리에 뜻있는 공무원 또는 민간인도 참여해 공개적으로 비전과 정책을 발표하고 주민의사를 반영해 적격자를 뽑는다는 구상이다. 신용인 교수는 이에 대해 “사실상 읍·면·동장 직선제 도입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앞으로 읍·면·동 차원에서 필요한 사업들은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행정은 예산을 지원하는 식의 실질적인 자치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치역량 높은 고양시에도 도입 적합

2010년 최성 시장의 취임 이후 주민자치는 고양시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손꼽혔다. 시정주민참여위원회 등 다양한 민관협치시스템이 마련되고 자생적인 주민공동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우수사례로 뽑히는 등 여러 성과들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양시의 주민자치가 껍데기뿐이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형식적으로만 운영되는 각종 위원회와 여전히 마을유지나 관변단체 인사가 상당수인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위에 군림하려는 동장의 태도로 인해 주민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고양시에서도 주민자치위원회 추첨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까. 만약 도입된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신용인 교수는 “고양시의 경우 주민들의 잠재적 자치역량이 뛰어난 곳이기 때문에 추첨제 도입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조례개정을 통해 주민자치위원회의 대표성과 권한을 명확하게 명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동장에 대한 임명권이나 해임권 같은 견제기능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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