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알 품다가 중도 포기
안정된 환경 조성 위해 다양한 노력

협소한 공간에서 고립된 생활
“두루미 사육 지속 여부 고민해야”

 

올해로 3년째 알을 낳은 호수공원 두루미. 알을 낳은 날 오전에 찍은 사진으로, 이후 새장에는 두루미의 안정을 위해 검은 필름망이 둘러졌다. <사진=이은정 독자ㆍ에코코리아 사무처장 >
[고양신문] 호수공원의 두루미(단정학) 부부가 7일 또다시 알을 낳았다. 2017년부터 올해로 내리 3년째 봄마다 산란을 이어오고 있다. 갇힌 공간에서 사육되는 두루미가 알을 낳았다는 것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도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202호 단정학이 고양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호수공원의 좁은 새장에서 경이로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고민도 따른다. 호수공원 두루미 부부는 2년 연속 새끼를 부화하는 데 실패했다. 두루미 알은 암·수 교대로 33일가량 잘 품어줘야 부화가 되는데, 호수공원 두루미 부부는 연거푸 포란(알 품기)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학습기회 상실, 포란 환경 불안정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애초에 알이 무정란으로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 까닭에 올해는 과연 포란과 부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과연 지금의 환경이 두루미가 정상적인 생활과 번식을 하는 데 적합한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두루미도 관리자도 “이제는 익숙해져”

호수공원 두루미가 알을 낳자 시 공원관리과 호수공원팀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김종천 호수공원팀장은 “가장 먼저 방문자들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새장 외부에 검은색 필름망을 둘렀고, 두루미가 알을 품고 있으니 소음발생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구를 내걸었다”고 밝혔다. 새장 내부에는 짚풀을 평소보다 두툼하게 깔아 두루미 부부가 알을 품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줬다. 김 팀장은 “두루미가 스트레스를 받아 포란을 포기하지 않도록 시민들의 세심한 배려와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공원관리과 호수공원팀에서 두루미 사육장 하단에 검은 필름망을 두르고, 안전거리 확보를 위한 줄을 쳐 놓았다.
호수공원팀 관계자는 "두루미의 안정을 위해 시민들의 배려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루미가 첫 알을 낳은 것은 2017년 5월이었다. 당시 처음 있는 일이라 모두가 깜짝 놀랐고, 사람도 두루미도 허둥지둥댔다. 자연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두루미는 경험 많은 두루미들을 보고 포란과 육아를 학습하는데, 호수공원 두루미 부부에겐 보고 배울 선배들이 없었다. 정상적인 포란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지난해에는 서식지에서의 산란시기와 일치하는 4월에 알을 낳아 부화 기대감을 높였다. 관리자들도 서둘러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두루미 부부 역시 초보 티를 벗고 본능과 경험의 가르침을 따라 알둥지를 만들고 2개의 알을 암·수가 번갈아 성실하게 품기 시작했다. 새끼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결국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또다시 포란을 포기하고 말아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올해 역시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실 알이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 이를 확인하려면 알을 꺼내 투시경으로 내부를 살펴야 하는데, 이러한 행위가 포란 본능에 방해를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며, 두루미들의 번식 본능이 긴 포란 과정 동안 의욕적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호수공원 두루미 부부가 첫 산란을 한 2017년 모습. <사진=백원희 독자>
2018년에는 제법 의젓하게 알을 품어 부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997년부터 이어진 두루미와의 인연

호수공원에 두루미가 사육되기 시작한 때는 1997년이다. 당시 고양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흑룡강성 치치하얼시가 고양국제꽃박람회 개최를 축하하며 단정학 암·수 한 쌍을 기증한 것. 이후 2000년에 암컷이 다리 염증 치료 과정에서 죽고, 10년 넘게 수컷 혼자 생활을 했다.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하는 두루미의 특성상 새로운 짝을 맺어주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 결국 홀로 남은 수컷은 2013년 서울대공원에 보내지고, 대신 다른 부부 한 쌍을 들여온 것이 지금의 두루미들이다. 이렇듯 호수공원의 두루미 부부는 고양시의 국제친선교류와 평화 염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대접받고 있다.
 

2000년 짝을 잃고 2013년까지 홀로 호수공원 새장을 지켰던 수컷 두루미. 1997년 중국 치치하얼시에서 기증받은 원조 단정학이다.


하지만 상징적 위상에 비해 현실은 초라하다. 호수공원 두루미 새장은 호수공원 작은동물원 시설의 일부일 뿐이다. 건너편 계사에는 금계, 공작, 오골계 등 5종의 새들이 살고 있고, 뒤편에 사는 이웃들은 다람쥐와 미어캣, 토끼 등의 작은 동물들이다.

현재 두루미를 포함한 동물들은 4년차 베테랑 박기정씨가 전담으로 돌보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귀한 동물인 두루미 부부에게 가장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그는 “아침·저녁으로 곡물사료와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먹이로 주는데, 두 마리 다 건강하게 잘 먹는다”고 말했다.
 

“호수공원 리모델링 과제에 두루미 문제도 다뤄야”

호수공원 작은동물원이 깨끗하고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설 자체가 협소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몸집이 작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대형 조류인 두루미를 좁은 새장 안에 가둬 사육하는 환경은 최근의 동물복지 눈높이, 또는 생태적 감성에 비추어볼 때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관리인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한정된 예산으로는 전문 사육사의 돌봄을 기대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때문에 이제는 호수공원에서 두루미를 기르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생태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A씨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새끼 탄생만을 기대하는 건 사람들의 욕심”이라며 “두루미가 매년 알을 낳는데도 아무런 개선책을 찾아주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두루미 부부가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서울동물원 등으로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루미에 대한 시민들의 애착도 크다. 자주 호수공원을 찾는다는 B씨는 “좁은 새장에서 생활하는 두루미들이 조금 불쌍하기도 하지만, 호수공원에 두루미가 없다면 무척 허전할 것”이라며 “다른 데로 보내지 말고, 더 넓은 새장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고양시는 고양시정연구원을 통해 호수공원 전반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호수공원 조성 초기부터 생태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는 에코코리아 이은정 사무처장은 “호수공원 리모델링 연구용역 과정에서 두루미의 사육환경 문제도 심도 있게 검토됐으면 한다”면서 “두루미를 포함해 모든 생명들의 가치를 인간의 편의적 기준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이제는 교정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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