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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부터 시작한 농협맨 “현장이 사무실”

기사승인 [1415호] 2019.04.14  18: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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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100년 조합원과 임직원이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조합원들의 조력에 의지해 강한 농협으로 성장시키겠다."
한산한 논둑 옆길을 따라 200여m 를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농촌지도자 송포지구회원들과 송포농협 임직 원들이 분주히 모판을 담고 있었다. 매년 봄 이맘때면 보는 풍경이지만이 날은 새롭지 않은 듯 새로웠다. 50여 명의 낯설지 않은 얼굴과 노란조끼 사이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3월 21일 취임한 임용식 송포농협 조합장이다. 선거공약에서처럼 그는 현장에 있었고 농업인들과의 소통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임용식 조합장의 강한 의지는 남달랐다. 지금까지 현장에 있었고 앞으로도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현장입니다. 송포농협의 발전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라며 현장이 본인의 사무실이라고 말했다.
임용식 조합장은 1955년 송포면 성절리(대화4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하나로클럽과 종합운동장, 일산서구청 인근이다. 돌이 되면서 대화5리 수용소 마을로 이사했고, 대부분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그 시절 대부분의 농촌이 그랬듯 임 조합장의 집도 매일이 보릿고개였다. 어렵게 대화초와 일산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14살의 나이에 생활전선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가 1968년 2월. 매서운 겨울이었다.
“첫 직장은 서울 답십리 소규모 과자 공장이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매서운 겨울 만큼이나 냉혹하더라구요. 여러 직장을 바꿔가며 집에 빚도 갚아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술만 좋아하셨고 때문에 빚의 꼬리는 끝이 없었습니다.”

급여 20%를 삭감해 이사와 대의원, 조합원이 사용위원회를 구성해하고 그 용도가 정해진다.
급여 통장을 보여주는 임용식 조합장. '2019. 3. 22 시작'이라고 쓰여져 있다.

금은방과 남대문시장에서 생선과 고기를 파는 정육점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현동 굴레방 다리에서 캐비넷(옷장) 공장에 다닐 때는 밥값이 아까워 500원짜리 두루마리 국수를 사서 5인분으로 쪼개 아끼고 아끼며 매 끼니를 국수로 채웠다. 아니다 다를까 위경련이 일어나 길바닥에 쓰러져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도 시간은 아무렇지도 안은 듯 무심하게 지나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1976년 5월 13일 해군에 입대해 1979년 4월 제대 후 성절리마 을에 정착했다.

4월 8일 농업인들과 함께 모판을 나르며 농번기의 시작을 같이 했다.

“제대 할 때는 돼지 값이 좋았습니다. 돈을 벌어보겠다고 돼지를 키웠어요. 마음 단단히 먹고 키우기 시작했는데 같은 해 가을 석유파동이 일어나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료 값이 오르면서 돼지 값이 바닥을 쳤습니다. 그냥 버릴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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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지인의 권유로 1980년 2월 송포농협에 입사를 하게 됐다. 다른 직원들 보다 1시간 반 일찍 출근해 청소와 문서수발 일을 했다. 바닥과 천정, 책상, 화장실 등을 빠짐없이 깨끗이 청소하고 여러 문서를 담당했다. 일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1982년 결혼도 했다. 가좌분소로 발령이 났고 유류와 정미소 담당을 혼자 다했다. 경운기로 배달을 다녔다. 경운기 축이 끊어지는 대형 사고로 죽을 고비도 두 번이나 넘겼다.

4월 5일 농업인 전진대회에서 지역 조합장들과 함께 했다.

1983년 큰 슬픔이 들이 닥쳤다. 야채장사를 하며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했던 어머니가 신경성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호전되지 못하시고 3년 만에 세상과 이별 했다. 고생만 한 어머니 에게 너무 죄송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보답 이라고 생각했다.
기능직에서 업무직으로 환직도 되고, 정식 사무직도 됐다. 계원으로 신용경제 업무를 거쳤고 경제신용부문 부장으로 있었다. 송포농협에서는 거치지 않은 부서가 없을 정도였다. 어디에 발령 나더라도 자신이 있었다. 
“어느 날 수년간 적자를 내고 있는 백송지점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직원들과 일심동체로 노력해서 흑자지 점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직원들이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그때가 제일 좋았다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저에겐 고마운 일입니다.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실제로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뇌출혈이 왔습니다. 노력했지만 생각만큼 수익이 안 났기 때문에 충격을 받은 거 같더라구요.“ 임용식 조합장은 그때 직원들의 고생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신규 개설된 지점은 거의 거쳤다.

임 조합장에게 장화와 농로는 낯설지 않다. 상황에 맞는 변화무쌍한 생각과 행동도 그의 장점이다. 

송산지점으로 발령 났을 때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횡단보도에서 교통안내도 했다, 지점을 알리고, 지역민들과의 친근감을 유지하는데 제일이었다. 3개 지점의 지점장과 본점 지도상무를 지냈고, 대화역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송포농협에서 정년퇴임했다. 이후 2014 년 3월부터 2016년 3월 까지 상임이 사직도 2년 동안 수행했다.
임 조합장은 바닥부터 시작해 큰 뿌리의 상록수를 스스로 완성 시켰다. 조합장이라는 긴 여정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다. 성장통에 있는 송포농협이 지치지 않도록 최적화된 소통도 구상하고 있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용지출은 최대한 안 하려 합니다. 조직의 현실과 현장에 맞는 지출로 긴축경영을 할 것입니다.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쓴다는 것입니다. 심사숙고하고 과감해 져야만 농협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두드리고 체크하고 확인하겠습니다. 과연 조합원들을 위하고 우리 농협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임용식 조합장은 임직원과 교감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약속대로 월급의 20%를 삭감하고 이사와 대의원, 조합원으로 구성된 사용위원회를 구성해 그 용도를 정할 예정이다. 약속은 꼭 지키는 임용식 조합장은 “조합원과 직원들의 시선과 고객의 시선이 같다면 송포농협에는 100년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했다.

농업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는 임용식 조합장(왼쪽).

한진수 기자 mygoyang@naver.com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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