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버스 문제,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기도는 6월부터 임금협상 시작
7월부터 52시간 적용, 파업 불씨 여전

국토부, 준공영제 재원 마련 등
구체적 방안 제시 없이 졸속 발표

시내버스 200원, 광역버스 400원  
요금 인상 등 시민부담만 가중

 

일산서구 대화마을 명성운수 본사 주차장에 정차된 버스의 전면에 '준공영제 시행하라'는 구호가 붙어있다.


[고양신문] 5월 15일로 예고됐던 ‘버스 대란’ 우려는 지자체별 노사 합의가 연이어 타결되며 일단 진정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버스요금 200원(광역버스 400원) 인상’과 ‘광역버스 준공영제 시행’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5.14 방안’을 발표한 장면은 이번 사태 해결의 분수령이 됐다. 시민들은 버스가 멈춰서는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고, 버스요금 인상에 대해서도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버스를 굴리기 위해 모두가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설득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고양시민 입장에서는 진짜 문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보는 게 맞다. 서울과 부산 등 주요 지자체를 중심으로 전개된 5.15 파업이 중앙언론에 의해 ‘버스 대란’으로 포장됐지만, 실질적으로 고양시 소속 버스는 이번 파업사태에 단 한 대도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도로 확대해도 5.15파업에 동참했던 업체는 이른바 ‘남경필표 준공영제’에 참여하는 15개 업체에 불과하며, 이는 경기도 전체 버스의 5%밖에 안 되는 수치다. 다시 말 해 고양시의 모든 버스, 경기도의 95% 버스를 모는 기사들은 6월부터 본격적으로 임금협상에 돌입한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상황으로 보자면 5.15 파업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쟁의사태가 6월을 고비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이다. 5.15 파업을 시도했던 버스기사들은 이미 준공영제의 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6월 협상을 기다리는 기사들은 이번 파업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조건의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분을 감안하면 최소한 80만~90만원의 기본급 인상이 임금협상을 통해 타결돼야 한다는 게 버스 기사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회사 측의 입장과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토부와 경기도가 합의한 5.14 방안으로 요금인상과 준공영제가 약속됐으니 해법이 마련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현장에서는 턱도 없다는 반응이다. 고양시의 한 광역버스 기사는 “7월부터 52시간이 적용되는데 요금인상은 9월에야 시행된다. 준공영제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할지 까마득히 먼 얘기다. 당장 다음 달 임금협상에 도움이 될 만한 조치는 아무 것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종오 명성운수 노조위원장도 “회사에서 인상된 버스요금으로 인한 수익 증가분 중 얼마만큼을 버스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사용할지 미지수”라며 협상의 난항을 우려했다.

국토부와 경기도의 이번 조치는 파업사태가 임박한 시점에서 졸속으로 마련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될 당시 버스업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둔 까닭은 그 기간 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버스업계·운수종사자와 함께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책 도입 부작용에 대한 고민을 1년 동안 손 놓고 있다가 파업 조짐이 가시화되자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요금 인상을 압박하고,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을 늘려달라며 신경전을 벌이는 동시에 ‘고통 분담’이라는 대 국민 설득을 병행했다. 그리고는 사태가 코앞에 닥치자 부랴부랴 시민의 호주머니에 기댄 임금 인상과 함께 부분적 준공영제를 시행하겠다는, 구체적 내용을 담보하지 않은 원론적 틀만 제시하며 사태를 봉합했다.

부부가 모두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주엽동 주민 이 모씨(37세)는 “시민도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하니 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광역버스가 400원 오르면 우리 집에서는 하루에 1600원의 부담이 느는 셈”이라며 “요금 인상이 달가울 리 없다”고 말했다.

5월 14일 발표한 ‘국민교통복지 향상을 위한 버스 분야 발전방안’에는 ▲경기도는 시내버스 요금을 일반형 200원, 직행좌석형 400원을 인상한다 ▲일반 광역버스는 국가사무로 전환하고, 국가사무인 M-버스를 포함하여 준공영제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통연구원과 경기연구원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조속한 시일 내에 시행되도록 한다, 등을 담았다.

연구용역이 이제서 시작된다는 얘기는 새롭게 시작될 경기도형 준공영제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특히 지원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 아직 아무런 설계가 없다는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고양시 관계자는 “이번 방안에서 일부 국비 지원을 약속했는데, 어차피 지원할 거였으면 진작부터 움직여서 청사진을 제시했어야지 안이하게 세월만 보내며 사태를 키웠다”며 국토부를 비판했다.

준공영제는 말 그대로 공영제와 민영제의 특성을 절충한 제도다. 운영은 민간회사에서 하고, 경영책임은 지자체가 분담하며 효율성과 안정성, 공공성을 담보하자는 제도다. 실제로 ‘준공영제’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그 형태는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준공영제를 설계하느냐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가 시행하고 있는 임금보전형 준공영제는 버스회사의 적자를 시민 세금으로 메우는 데 그치는 제도라는 비판이 높다. 일부에서는 손실금을 전액 보상받는 기존의 준공영제를 ‘버스회사의 꽃놀이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친인척을 회사 임원으로 선임하고, 인건비를 부풀려 신고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뉴스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이유다. 경영상의 부실을 막지 못하면 준공영제의 가장 중요한 명분인 공공성도 담보되지 못한다. 서울시만 해도 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익성 낮은 노선을 폐지하는 부작용마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5.15 조치에 따라 새로 설계될 준공영제는 버스업체의 경영 투명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일찍부터 버스 문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온 민경선 경기도의원은 “시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당근만 건네줄 게 아니라, 경영개선을 촉구하는 채찍도 지자체가 확실하게 손에 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버스 사태를 바라보는 고양시민의 입장은 네 줄로 요약하면 될 것 같다. 첫째, 만만한 게 시민인 듯 버스요금부터 올려 화가 난다. 둘째, 정부와 경기도의 늦은 대처가 한심하다. 셋째, 새로운 준공영제 어떻게 설계할지 지켜보자. 넷째, 고양시 임금협상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각오를 단단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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