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결 따라 역사의 흔적 따라,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5) - 창릉천의 생태적 과제와 미래


■ 연재 순서
(1) 공릉천 상 (2) 공릉천 하
(3) 창릉천 상 (4) 창릉천 중 (5) 창릉천 하
(6) 도촌천 (7) 대장천 (8) 장월평천 (9) 성사천 (10) 벽제천


생태 감수성에 반하는 준설사업
환경 단순화·생태교란종 부작용
생태 위협하는 과한 자전거도로
하구 둔치, 꽃밭보다 습지공간

 

하천 주변의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전된 창릉천 일부 구간. 갯버들이나 키버들 같은 작은 관목 버드나무들은 생물다양성에 큰 도움이 된다. <사진=이중희>


[고양신문] 전문가들은 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치수, 이수, 환경 3가지로 구분하곤 한다. 치수는 말 그대로 물길을 다스리는 것을 말하고, 이수는 물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치수와 이수가 하천을 대하는 전통적 관점이었다면, 환경은 가장 늦게 대두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물을 다스리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을 넘어 하천이 가진 생태적 가치와 보전의 중요성을 늦게나마 깨우친 것이다.
고양의 하천을 하나하나 둘러보다 보면 이 세 가지 개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 보다는 아쉽게도 서로 어긋나고 충돌하는 양상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된다.
이번 연재에서는 창릉천을 비롯해 고양의 하천을 나들이하며 확인한 몇 가지 문제점들을 환경적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다양한 고민들이 창릉천의 미래를 그려나갈 건강한 아이디어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준설 중심 하천 정비작업의 문제점  
 
 
장마철을 앞두고 하천 바닥과 둔치를 중장비를 동원해 긁어내는 준설작업이 하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일 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포크레인이 깔끔하게 밀어버린 자리에는 흙과 자갈이 볼썽사납게 노출됐다.
생태전문가와 활동가들은 준설 중심의 정비작업에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  효용만을 앞세운 편의적 조치라는 것이다. 물고기들의 안식처가 파괴되고, 새들의 보금자리도 훼손된다. 물굽이에 의해 자연스레 생성됐던 여울과 소가 사라진 하천은 단순히 물이 이동하는 수로로 전락한다.
포크레인 준설작업은 식생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생태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나무나 초본들까지도 한꺼번에 제거한다. 창릉천 생태계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이중희 활동가는 창릉천 하류 부근에 희귀종인 왕버들이 몇 개 자생하고 있었는데, 하천정비작업을 하며 제거돼 무척 아쉬웠다고 말한다.

장마철을 앞두고 창릉천의 지천인 가시골천에서 포크레인이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하천 준설작업은 본의 아니게 생태교란종의 확산에도 일조한다. 흙이 파헤쳐지면 단풍잎돼지풀이나 환삼덩굴과 같은 생태교란식물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결국 토종 식물들이 차치하고 있던 자리를 단풍잎돼지풀이 손쉽게 점령하는 빌미를 포크레인 작업이 제공하는 셈이다.
물론 과도하게 자라난 습지식물들을 일정부분 제거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싹쓸이식 바닥준설은 지양돼야 한다. 고양시 하천 전체의 생태적 실태를 정밀하게 파악해 각각에 맞는 치수와 환경 대책을 수립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준설작업으로 인해 붉은 흙이 드러난 하천둔치. 무분별한 준설작업은 생태교란종 확산이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무섭게 창궐하는 단풍잎돼지풀

고양하천네트워크에 소속된 활동단체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단어가 바로 ‘단풍잎 돼지풀’이다. 번식력이 워낙 강해 토종 식물들의 서식지를 점령해 버리고, 제거도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단풍잎돼지풀은 미세먼지처럼 작은 수꽃가루를 날리는데 호흡기와 눈병, 피부알러지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고양시 거의 대부분의 하천 둔치와 둑방 경사면에서 단풍잎 돼지풀은 말 그대로 무섭게 ‘창궐’하고 있다. 현장을 직접 가 보지 않고는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큰 녀석은 키가 4m까지 자라 밀림을 방불케 한다.
단풍잎돼지풀 씨앗은 흙 속에 숨은 시한폭탄이다. 흙이 드러나도록 땅을 파헤쳐놓으면, 흙 속에 잠재돼 있던 단풍잎돼지풀 씨앗이 다른 토종식물보다 가장 먼저 발아해 나대지를 선점해 버리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이 시한폭탄이 표면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불법 경작, 또는 하천부지에서 진행되는 각종 공사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도로 양 옆에 어마어마한 규모와 밀도로 늘어선 단풍잎돼지풀. 크기 비교를 위해 나란히 선 한기식 사무국장의 키보다 두 배는 돼 보인다.

 
생명 안식처 침범하는 자전거도로

자전거는 분명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화석연료를 소비하지 않고,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도 내뿜지 않는다. 하지만 하천 생태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자전거는 고민스러운 존재가 됐다. 하천의 둔치 안쪽, 습지생명들의 안식처까지 자전거도로가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교통 현실을 생각해보면, 자전거도로의 하천 선호가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도로는 좁고 차는 많고, 차량이나 보행자와의 간섭 없이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는 곳이 그나마 강변 둔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에서 진행된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 각 지자체마다 하천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자전거도로를 내는 게 유행이 돼 버렸다.
생태전문가와 활동가들은 가능하면 자전거도로가 둔치로 내려오지 말고, 둑방 위 도로를 이용해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 자전거문화 전도사인 자전거21 한기식 사무국장 역시 일부 노폭이 좁은 하천에 굳이 물길에 바짝 붙은 자전거도로를 놓은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인간 중심의 ‘편리성’을 넘어서는, 최소한의 생태적 감수성을 고민하는 일은 향후 자전거도로 조성에도 반드시 적용돼야 할 것이다.

습지생명들의 영역을 가로지르기 일쑤인 자전거도로는 생태지킴이들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하천 숲길 조성에 대한 아쉬움 

고양시가 야심차게 발표한 ‘나무권리선언’ 연계 추진사업 중 눈에 띄는 것이 ‘맑은 하천, 푸른 숲길 조성계획’이다. 2020년까지 창릉천, 공릉천, 대장천, 도촌천 등을 활용해 명품 가로숲길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방의 구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녹색의 차단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생태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경관만 고려할 게 아니라, 생태적 다양성을 유인할 수 있는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려해주기를 주문했다.
그런 측면에서 시 녹지과가 설계한 숲길 조성계획을 살펴보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산림청에서 제시한 ‘미세먼지 저감효과 우수나무’ 목록을 참조해 메타세쿼이아, 이팝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생태전문가들은 “하천변에 어울리는 나무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하천 숲길은 단순한 ‘녹지 조성’을 넘어, 생태축을 견인하는 역할을 지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환경단체 활동가들. <사진=이중희>


천변에 어울리는 버드나무와 창포

식물들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성장환경이 따로 있다. 물가에는 예전부터 물가에서 군락을 이룬 풀들과 나무들이 자라는 게 바람직하다.
하천 기행을 하다 보면 주택가와 인접한 하천변에 특정한 묘목을 식재하거나 꽃밭을 조성한 구간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아쉽게도 일반 공원처럼 화사한 꽃을 피우는 관상용 개량종들을 심어놓았다.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조화와 안정 측면에서 아쉬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천변의 나무로 가장 어울리는 종은 역시 버드나무다. 생태적으로 안정적이며 정서적으로도 은은한 운치를 선물해준다. 이중희 활동가는 버드나무가 수질과 공기를 정화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는 수종이라고 말한다. 또한 커다랗게 자라는 왕버들, 가지가 하늘하늘 늘어지는 능수버들, 관목 크기의 갯버들·선버들 등을 각자의 자리에 맞게 자라도록 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초본으로는 많은 이들이 창포를 추천한다. 하천을 따라 창포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 무렵 단오날 축제를 열어도 좋지 않을까.

물길 주변에 자라는 키버들과 갯버들 숲 그늘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든다. 중대백로가 물고기들을 노리고 있다. <사진=이중희>

 
창릉천 하구, 명품 습지생태공원으로 조성됐으면…

창릉천 하구에 조성된 코스모스밭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곳은 하천네트워크 소속 단체와 마을 주민들이 여러 해 헌신적 노력을 기울였고, 그들의 수고로 쓰레기투기와 훼손으로 방치됐던 하천 둔치가 쾌적한 친수공원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을 기자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생태전문가들은 하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강 하구의 생태계가 단일 품종으로 단조로워졌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경관적 아름다움을 선물해주지만, 하천 하구의 생태와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꽃밭이 조성된 지역은 바닷물이 밀고 올라오는 한강 기수역 생태계와 맞닿은 곳이다. 설계만 잘 하면 하천 하구의 특성에 걸맞는, 말똥계와 같은 기수역 생명체들이 들고 나는 습지생태공원의 최적지인 셈이다. 그렇게 되면 강매석교, 행주산성과 연계한 명실상부한 명품 역사·문화·생태 벨트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 안목에서의 방향전환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코스모스밭 조성을 위해 창릉천 하구 둔치를 갈아놓은 모습.

 
도시개발과 마주한 창릉천의 미래

창릉천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상류의 지축지구가 마무리를 앞두고 있고, 중·하류의 대부분이 창릉신도시 구역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신도시 영역에 포함되면 하천은 전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자연하천으로서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훼손과 방치에서 벗어나 계획적 관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앞선 연재에서 창릉천을 ‘준 인공하천의 운명’이라 말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생태적 요소를 최대한 살린, 제대로 된 인공하천을 설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이다. 
더불어성사천에서 활동하는 이중희씨와 이영강씨는 창릉천의 현재를 “곳곳이 불구인 하천”이라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관리 여부에 따라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하천”이라는 기대도 놓지 않고 있다. 신도시 하천의 미래상을 미리 보여주는 삼송구간에 대한 평가를 청하자 “정비가 비교적 잘 됐지만, 사람 중심의 녹지축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고 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하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철새 모니터링을 해 보면 흰뺨검둥오리나 백로, 왜가리와 같은 제한된 종들만 찾을 정도로 생태다양성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는 녹지축과 생태축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녹지축이 인간의 이동과 이용에 방점을 둔 개념이라면, 생태축은 말 그대로 다양한 생명들의 존재를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미래의 창릉천은 단순한 녹지축을 넘어 풍요로운 생태축으로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정 에코코리아 사무처장은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조건을 조성해주고 시간을 기다리면, 자연은 스스로 풍요로운 다양성을 머지않은 시간에 회복하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줄 것이라는 얘기다.
여울과 소가 살아있고, 우리 토양에 맞는 나무와 초본이 자라고, 물고기와 곤충과 새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하구에 풍요로운 기수역 습지가 복원된 생명의 벨트….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창릉천이다.

■ 도움말 : 이중희·이영강 더불어성사천 생태활동가, 한기식 자전거21고양지부 사무국장, 이은정 에코코리아 사무처장,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갈대나 작은 관목 사이를 옮겨다니며 먹이활동을 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의 귀여운 모습. <사진=이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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