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ad57
default_nd_ad1
ad40

원당 코앞까지 한강물 들고 나던 물길, 대장천

기사승인 [1434호] 2019.08.30  18:31:21

공유
default_news_ad2

- 생명의 숨결 따라 역사의 흔적 따라,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7) - 대장천 상

옛사람들의 역사 품은 4개의 상류 지천
원당 시가지 개발 때 일부 하수도로 복개
한강 둑 생기며 물줄기 정비된 대장천
배다리마을 장터마을 등 옛 이름 남아

 

[고양신문] 대장천은 원당에서 시작해 영주산마을과 대장동마을 앞 들녘을 가로질러, 화정지구를 건너다보며 한강을 향해 흐른다. 대곡역과 능곡 삼성당마을을 지난 물길은 한강의 관문 신평배수펌프장 앞에서 도촌천, 행신천과 만난다.
대장천의 시작점은 고양소방서 건너편 원당 제1공영주차장 바로 옆이다. 그림지도에 나타나듯 대장천으로 모여드는 4개의 지천(동쪽부터 사근절천, 수역이천, 박재궁천, 독곶천)은 고양시청이 자리하고 있는 원당지역을 부채꼴처럼 사방에서 감싸고 흘러내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당으로 매일 출근하는 고양신문 직원들조차 대장천 지천들의 존재를 잘 모른다. 이유가 있다. 땅 밑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복개된 하천을 다시 복원하기도 하지만, 70~80년대까지만 해도 택지개발이나 시가지 조성지역에 포함되는 소하천은 여지없이 복개를 하곤 했다. 고양에서는 사근절천과 수역이천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70~80년대 원당지역이 고양군 최초의 신시가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두 하천이 복개돼 상류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스팔트 밑을 흐르는 하수도가 된 것이다. 반면 박재궁천과 독곶천은 원당 중심부를 벗어난 외곽지역을 흐른 덕분에 복개를 면할 수 있었다.

 

원당에서 시작해 대장동 벌판을 향해 유유히 흐르는 대장천 상류 물줄기.

 
사라진 절 이름에서 유래한 사근절천

4개 소하천을 포함해 대장천 수계 지역에는 지금까지 사용되는 전통마을의 이름이 여럿 남아있다. 수역이마을, 사근절마을, 박재궁마을, 독곶이마을, 대정마을, 영주산마을, 삼성당마을, 토당리와 신평리 등은 이름 자체가 흥미로운 고양땅의 역사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동쪽 성사동에서 발원한 사근절천은 오래전 이 마을에 사근사(沙斤寺)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근절마을의 사(沙)자와 인근 성라산(星羅山)마을의 성(星)자가 합쳐져 현재의 행정구역인 성사1·2동(星沙洞)이 만들어졌고, 성사(星沙)를 우리말로 풀어내 고양어울림누리에 ‘별모래극장’이라는 예쁜 공연장 이름이 지어졌다.
재밌게도 마을 사람들은 사근절에 빈대가 많아 절이 삭아버려 이름처럼 ‘삭은절’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근절천 인근에는 고양팔현(高陽八賢)의 한 분인 복재(服齋) 기준(奇遵) 선생의 묘를 비롯해 고양이 배출한 명문가 중 하나인 행주 기씨(幸州 奇氏)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사근절천 인근의 행주 기씨 대종중.

서삼릉 숲에서 시작되는 수역이천

수역이천(壽域里川)은 서삼릉과 이어진 숲에서 발원한다. 자료에는 수역(壽域)은 환경이 좋은 장수마을이라, 또는 물이 많은 동네라는 뜻의 수역(水域)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쇄기벌레가 많아 쇄기, 또는 쇠기말로 부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말 이름이 먼저 불리다가 표기 과정에서 음이 같은 한자가 채택되고, 뒤따라 의미가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지명에서 동일하게 발견되곤 한다.
수역이마을은 전형적 자연촌락이었지만, 원당과 서삼릉을 오가는 마을길을 따라 음식점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찾는 먹거리마을로 변모했다. 하지만 새로 건설 중인 서울문산고속도로가 마을 중간을 관통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역이마을을 빠져나와 원당을 향해 흐르던 수역이천은 성사고 건너편 성사체육공원 앞에서 복개구간을 만나 땅 밑으로 흘러든다. 원당역에서 시작되는 걷기코스인 서삼릉누리길을 따라 걸으면 사근절천과 수역이천의 상류 지역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성사체육공원 부근에서 하수도로 들어가는 수역이천.

대궐약수터에서 발원한 박재궁천

고양시청이 자리한 주교동 서편을 감싸고 흐르는 박재궁천(朴齋宮川)은 대장천 지천 중 가장 길고 수량도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박재궁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대장천의 실질적 발원지라 할 수 있는 대궐약수터를 만난다.
대궐약수터는 물맛이 좋고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해 인근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고려의 마지막 임금의 능 공양왕릉(恭讓王陵)이 자리하고 있는 왕릉골이다. 공양왕이 왕릉골에 피신해 있을 때 이곳 약수터의 샘물을 마셨다고 해서 대궐약수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작은 옹달샘에 ‘대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패망한 나라의 임금을 애도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씨가 참으로 순박하다. 대궐약수터를 찾아가려면 박재궁 마을을 따라 걸어 들어가도 좋고, 마상공원에서 시작되는 배다리누리길을 이용해도 된다.    
박재궁은 인근 능골에 있는 밀양박씨의 재실(齋室)이 마치 궁처럼 규모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연립주택이 밀집한 원당 주택가 북쪽 전체를 밀양박씨 선산인 ‘두응촌 묘역’이 감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박재궁 마을 이름이 유래한 밀양 박씨 종중 묘역.

 박재궁마을은 시청과 지척의 거리지만, 개발에서 밀려나 돌담이나 기와집 등 전통마을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곽순환도로에 이어 최근에는 39번국도 대체 우회도로가 건설되며 마을이 또다시 쪼개지는 피해를 겪고 있다. 39번국도 우회도로는 이후에도 대장천 본류와 평행을 이루며 능곡고가까지 나란히 달린다. 
다른 소하천들과 달리 박재궁천의 상류에는 공장이나 음식점 등 오염원이 거의 없어 수질이 깨끗하다. 이 무렵 박재궁천을 찾아가면 하천 경사면을 따라 강아지꼬리마냥 탐스럽게 흔들리는 수크령이 가득 자라나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하천 경사면 양쪽으로 수크령이 가득한 박재궁천 물줄기.

홀로 튀어나온 독곶리에 장이 열리고

독곶천(獨串川)은 고양시청 서편, 산황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주교동으로 흘러내려와 대장천과 합류하는 소하천이다. 상류 인근에는 배다리막걸리를 만드는 고양탁주 양조장이 자리하고 있다.
꼬챙이를 뜻하는 곶(串)자가 지명에 쓰일 때는 호미곶이나 장산곶처럼 해변이나 강가의 돌출된 지형에 붙여진다. 이곳이 독곶이마을로 불린 까닭 역시 한강물이 원당 코앞까지 들어오던 시절, 이 마을이 홀로 툭 튀어나온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독곶이마을에는 장터거리라는 지명도 남아있어 대장천 물길을 따라 작은 배들이 들어와 소규모의 장을 펼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준다.

독곷천과 대장천의 합류 지점.

한강물 넘치면 배다리 놓던 주교리

대장천 시점에 위치한 주교동(舟橋洞)의 유래도 살펴보자. 많은 이들이 아는 것처럼 주교동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배다리마을이다. 지금으로서야 상상이 되지 않지만, 1930년대 한강 제방(일명 대보뚝)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한강물은 지금의 토당동 방향에서 흘러들어와 대장천을 물길 삼아 화정 벌판을 거쳐 원당 일대까지 넘나들었던 모양이다. 주변 지명만 봐도 배(舟), 모래(沙), 곶(串), 우물(井) 등 물과 관련된 한자가 유독 많이 쓰인다.
특히 하천물이 크게 불어나면 마을과 마을을 건너다니기 위해 배를 연결해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배다리마을, 곧 주교리(舟橋里)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일산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명실상부 고양군의 중심지였던 원당 주교동에는 배다리식당, 배다리누리길, 배다리술도가 등의 이름이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공식적으로 기록해놓은 공간도 있는데, 바로 시청 앞 오거리 중간의 작은 공원이다. 2016년 조성된 공원에는 돌탑과 작은 조각배, 그리고 ‘배다리 이야기’를 적어놓은 비석이 놓여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교외선 철길 고가 아래 교통 섬 한가운데 덩그러니 만들어져 일부러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고양시청 앞 교차로에 조성된 주교동 배다리공원.

모든 하천은 말없이 흐르지만,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참 많은 이야기가 물과 함께 흐른다. 대장천 주변의 전통마을 이름들은 100여 년 전만 해도 원당 바로 앞까지 한강물이 들고 나는 갯골 지형이었다는 사실과, 물길과 뱃길이 주요 이동수단이었던 고양땅 옛 선조들의 생활상을 상상하게 해 준다. 한강에 둑이 만들어지며 사방으로 뻗은 갯골들이 비로소 일직선으로 정비되며 바로 지금의 대장천이 된 것이다. 다음 회에는 대장천의 오늘날 모습과 미래를 짚어보도록 하자.  

■ 참고자료 : ‘고양시 생태하천지도-대장천’(자전거21고양지부, 고양시), 『고양의 지명이야기』(정동일, 고양시), 『우리마을 고양의 문화재 이야기』(고양문화원)
■ 도움말 : 윤광옥 고양시 생태하천팀장

※ 고양의 생태하천 기행 시리즈 전체 기사는 고양신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장천 상류 지천인 박재궁천 발원지 대궐약수터.

 

성사체육공원 경계를 따라 흐르는 수역이천.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ad63
ad46
ad35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ad41
ad81
ad74
ad80
ad92
ad100
ad98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etNet2
ad75
ad91
ad90
ad28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