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 <높빛시론>

최창의 행복한미래교육포럼대표.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

[고양신문] 가을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한강변 자유로를 달려 파주 가는 길이 막히지 뭡니까? 차가 도로에서 주춤 주춤대며 가다서다 반복하니 은근히 짜증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푸우 한숨을 내쉬다 왜 짜증을 낼까 들여다보았습니다. 출근길이 막히니 조급함과 답답함이 뒤섞여 그런 것이지요. 어떻게 이 기분만이라도 전환할까 사색하다가 제가 숲으로 출근하는 길이라는 걸 깨우치게 되니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다시 말해 조금만 참고 가면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일터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아침이면 막힌 도로를 타고 도심의 콘크리트 건물숲으로 출근하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거꾸로 일산 아파트숲을 나와 사방산 숲 속 교육연수원으로 출근한 지 어언 1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저에게 무엇보다 주변 자연이 준 선물은 너무 크고 소중했습니다. 처음 부임하던 지난해 가을부터 새롭게 만난 자연 풍경에 흠뻑 젖어 지내온 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임진강변을 지나 법원리로 들어서는 시골길은 한적해서 평화롭습니다. 연수원 둘레 숲길과 이웃 자운서원의 가을 단풍은 형형색색으로 가을을 물들여 눈길을 붙잡지요.

이렇게 자연이 주는 선물만 받기가 미안했을까요? 그 때부터 연수원 곳곳에 자연을 담고 들여놓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화단 빈 터에 40여종의 우리 야생화를 심고, 오가는 길 둔덕에는 코스모스와 백일홍 같은 여러 가지 꽃씨를 뿌려 두었습니다. 식목일 즈음에는 산수유 세 그루와 백목련을 심어 봄을 알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심은 야생화 꽃들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 봄여름을 보냈습니다. 이제 가을로 접어드니 코스모스꽃이 하늘거리고 백일홍은 오래도록 은근히 피어 있습니다. 사이사이 모종으로 심었던 들국화는 가을향기를 더해줍니다.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사방산 아래 연수원에는 아기자기한 꽃들이 어우러져 제 빛깔을 내고 있습니다.

자연이 이처럼 내려주는 축복 속에 무엇을 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연수원의 본령인 “밥처럼 맛있는 연수”를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정말 우리 연수원 밥맛은 알아줍니다. 어느 연수원보다 밥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고 실제 연수 만족도에서도 밥맛, 다시 말해 급식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 밥맛처럼 좋은 연수를 만들겠다니 꿈이 야무지지요. 그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도전을 했습니다. 멋진 연수를 만들기 위해 마치 맛난 밥상을 차려 내어놓듯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실행하였습니다. 학교현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연수 주제와 내용을 선정하고, 먹음직스럽게 강의하는 훌륭한 강사를 찾았습니다. 연수 방식도 다양하게 차려놓고 골라 듣게 하는 분반 선택 형태로 진행하였습니다. 가만히 앉아 일방으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말하고 체험하는 연수를 펼쳤습니다.

우리 연수원이 교직원 대상 연수기관이더라도 그들만의 섬처럼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파주의 외떨어진 숲 안에 있지만 지역사회와 함께 숨쉬는 연수원이 되려고 애썼지요. 그래서 문을 활짝 열어 교직원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군부대와 주민, 자치단체에서도 연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지난 1년 동안 1사단과 방공여단의 군인 간부와 지휘관들이 연수원 건물에서 교육 연수를 진행하였고요. 파주시 생태체험 해설사 교육, 파주교육청 교장,교감단 회의, 경기도 평화통일교육연구회원 통일체험교육, 몽실학교 지역담당자 워크숍 등 여러 지역 기관과 단체의 구성원들이 연수원을 이용함으로써 작게나마 공공 활동에 기여했습니다. 그에 앞서 지난봄에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어 파주 벽지지역 5개 초등학교 어린이들 200여명이 타악기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일찍이 “인류사에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다. 중심부는 변화에 둔감하기 때문에 곧 쇠락하게 되고, 변화가 활발한 변방이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고 설파했습니다. 우리 교육연수원도 변방에 있지만 교육을 혁신하는 데 있어 심장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새로운 연수를 끊임없이 공급하여 낡은 교육이 아닌 창의적인 미래교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기교육 공동체가 연수의 숲길을 걸어가면서 서로 배우고 나누며 실천하길 소망하며 오늘도 정성을 다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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