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 시론> 김종일

김종일 동화작가. 소설가

[고양신문] 어느새 가을 산에 단풍이 들어간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 그 무덥던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다. 아침저녁으로 피부로 느끼는 기온도 하루하루가 다르다. 산과 들, 아파트 주변의 나무들도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간다.

계절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순리대로 진행한다. 자연의 순리는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찾아오고 변화한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인성뿐인 듯하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이성(理性)이 있고 자기절제와 도덕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이 살 만한 사회는 법과 상식, 원칙이 통하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과 겸손함에서 비롯될 터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이러한 법과 상식, 원칙이 무너지고 미덕(美德)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자기주장과 독선과 아집,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만 앞선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하지 않고 배격한다. 특히 이념 논쟁에 있어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 한 치의 양보와 타협도 없다.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찢어발기다시피 늑대처럼 잔혹하게 공격한다.

대화와 타협과 관용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무차별적인 공격만 있을 뿐이다. 이런 살벌한 사회에서 사회정의와 도덕과 법과 상식은 실종되어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기가 어렵다.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만 해도 비극인데, 이제는 이념으로 분열되어 있다. 최근 조국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고, 검찰 개혁을 두고 진보와 보수(극우세력 포함)의 대립과 분열을 보고 느끼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내편 아니면 상대편은 적이다. 이런 편 가르기의 비상식이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을 위정자에게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조선을 망하게 한 당파싸움도 현재의 여야의 대립과 싸움 정도로 치열하였다. 당파의 이익에 따라 상대 당파 사람들을 모함하고 유배를 보내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런 살벌한 당파싸움의 결과 조선은 파멸을 불러왔다. 현재의 여야의 대립과 진보 보수의 싸움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치의 양보와 타협의 여지도 없다. 그저 상대방이 백기 들고 투항만 요구한다.

조선말 왕의 무능과 세도정치, 민씨 일가의 전횡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의 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또한 백성들은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수탈로 살 수가 없어 죽창을 들고 항거하였다. 동학혁명이 그것이다. 백성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백성이 살 수 없는 나라는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기업 후원금 사건으로 나라가 엉망이었을 때,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권의 도덕성은 우월한가? 문재인 대통령 본인은 도덕성에서 문제가 없을지는 몰라도 측근은 그렇지가 않았다. 조국이 그랬다. 조국의 말과 행동은 언행일치가 되지 않았고 이중적 행동을 하였다. 조국이 한 일이 설령 위법성은 없다 하더라도 국민 정서와 상식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임명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보정권이 내세우는 가치이념은 평등과 인권, 도덕성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점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고 정권을 잡았다. 그런 정권이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인사를 장관으로 임명해서야 쓰겠는가. 이제 조국은 물러났다. 정부와 여당은 분열과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여야 한다. 야당도 국회 밖에서 국민들을 이간질시키면서 온갖 비판을 일삼는 일을 삼가야 한다. 야당이 잘하는 일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서 정부 여당만 비판하는 짓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국회에서 논의하고 토론하고 비판할 일이다.

만산홍엽이다. 자연은 때가 되면 순리대로 계절이 바뀌고 단풍이 든다. 자연 앞에 인간은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너 잘났느니 너 못났느니 해봤자 도토리 키 재기다. 하늘을 거스르는 자가 되지 말고 하늘에 순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하늘은 곧 국민이다. 국민의 눈을 속이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만산홍엽, 가을 산에 올라 붉게 물드는 단풍을 보며 마음을 비우고 겸허함을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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