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좌도서관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

10주 동안 책 읽고, 요리하고, 글 쓰고...
30명 이야기·레시피 모아 책으로 엮어
“엄마표 음식·사랑 되새긴 소중한 시간”

9일 가좌도서관에서 열린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 출간기념식에서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축하객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고양신문] 동네 사람들이 도서관에 모여 10주 동안 엄마의 음식에 대한 책을 함께 읽고, 엄마의 대표 음식을 함께 만들어보고, 엄마의 인생에 대해 함께 썼다. 그리고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라는 책을 만들었다.

가좌도서관에서 5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시즌1에 이어, 8월부터 11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전에 10강이 진행된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을 기록하다’ 시즌2 강좌가 끝났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강생 30명의 글을 책으로 엮었고, 9일 오전 가좌도서관에서 도서 수여식과 축하공연, 음식 나누기로 출판기념식을 열어 따듯한 시간을 가졌다. 이선화 가좌도서관 관장과 강좌 담당 박대원 주무관을 비롯해 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 최경숙 일산서구 도서관과장, 엄혜숙 그림책 평론가, 이예숙 그림책 작가 등이 함께해 축하했다.

평범한 사람이 작가가 됐다는 즐거움에 시종일관 이야기꽃과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고양챔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마더 오브 마인(mother of mine)’을 들을 때는 엄마에 대해 각자 다른 기억과 사연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선화 관장은 축하 인사에서 “20주간 진행된 맛의 기억 프로그램 덕분에 올 한해를 엄마의 음식과 함께 보낸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도서관에서 요리도 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묻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진행을 해주신 세 분 선생님들 덕분에 가능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거의 날 밤을 새우며 정성을 다해 준비해 주셨거든요. 거기에 여러분들이 시간을 내주시고 귀한 이야기들을 한껏 풀어주셔서 책이 나오게 됐네요. 책 표지도 시즌1 참가자인 장순일 작가님이 그림을 그려주셨고, 제목은 이명옥 님이 캘리그라피를 배워 써주셨어요. 힘써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배부른 출판 기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 처음 이곳 도서관 사서로 임용돼 프로그램을 진행한 박대원 주무관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맛의 기억’이라는 훌륭한 책이 완성되었다”면서 “함께 애쓰고 같이 출판 작업에 동참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애초 “세월이란 장사가 엄마의 손맛을 데려가기 전에 엄마의 음식을 책으로 만들어서 선물해 보자”는 취지로 진행된 이 강좌는 최지현, 김현숙, 이은주 3명의 진행자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우리 집의 대표 음식과 엄마의 대표 음식을 정하고, 그 사연을 발표했다. 매 시간 어렸을 때의 기억을 소환하고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며 한명 한명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에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았다.
 

서유경 씨 엄마의 대표음식 '별 총총 약밥'을 조원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엄마의 음식은 그리움이다, 엄마의 음식은 지금의 나다, 엄마의 음식은 사라진 시간이다, 엄마의 음식은 원 플러스 원(1+1)이다” 등 각자 엄마의 음식을 규정해 보는 시간도 의미 있었다.

4-5명이 한 조로 대표 음식을 정해 레시피를 나누고 함께 만들었다. 시즌1에는 장떡, 카스텔라, 김치만두, 쑥개떡을, 시즌2에는 호박만두, 김치말이국수, 약식, 김치떡복이, 술빵을 만들면서 내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화동에서 밥집 카페 ‘수다스토리’를 운영하면서 이 프로그램에서 ‘굳세어라 가자미식해’라는 글을 쓴 박진숙 씨는 “오랜만에 엄마라는 말을 많이 써보고 많이 불러보는 시간이었고, 가슴이 굉장히 뜨거웠던 가을이었다. 작가가 됐으니 저도 열심히 맛있는 밥을 만들고 좋은 엄마도 되겠다. 가을에 엄마를 불러보고 추억여행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림책 작가이면서 ‘멋쟁이 고춧잎나물’이라는 글을 쓴 이상미 씨는 “선생님들이 엄마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지극 정성으로 이끌어 주셔서 매 시간 감동이었다”면서 “저는 어렸을 때 엄마를 많이 미워하면서 자랐는데, 엄마를 깊이 생각하고, 엄마가 좋았다는 점을 되찾는 기회가 돼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다 함께 만든 강신녀 참가자 엄마의 대표음식 '호호호 호박만두'

행복한책방 점장이자 ‘잠재적 사랑꾼 잣죽’을 쓴 김경리 씨는 “엄마를 본능적으로 사랑은 했지만 생각으로는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처음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했지, 엄마에 대해 풀 이야기가 있을까 엄마에 대한 의미가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엄마만큼만 해도 좋은 엄마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가 됐으니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 외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됐고 엄마와 눈 맞춤을 하게 됐다. 엄마는 나와 뗄 수 없는 사람이고, 우리 모두 누군가의 엄마다. 서른 분의 엄마를 만나고 찾게 돼서 감사한다. 아들은 느끼기 힘든 엄마와 딸의 기억을 음식으로 녹여낼 수 있었다.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제 이름이 들어간 책이 처음 나오니까 굉장히 흐뭇하고 좋다. 엄마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다 담기에는 페이지가 너무 부족해서 아쉽지만, 엄마에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아 뿌듯하다”고 이구 동성으로 말했다.


이 수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양수겸장 계란쪽파무침’이란 글을 쓴 김현숙 선생은 출판사 편집인으로 이번 책을 디자인해 『맛의 기억』으로 완성시켰다.

“30년 가까이 편집자 생활을 했는데 30명 가까운 작가들을 한꺼번에 만들어 낸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사실 매년 특별한 일 없이 지냈는데, 올해는 편집자로서도, 제 인생에서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됐어요. 너무 감동적이었고 행복하고 뿌듯해요.”

처음 이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함께 진행한 최지현 선생은 ‘먹고보라 가지버거’라는 글을 썼다. “시작한 계기가 엄마 때문이었는데, 꼭 내 엄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같이 소통하고, 서로 보듬고, 위로해 주면서, 어머님들이 그 가족이 된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수업에 참여했던 몇 분은 밝아지셨고, 직업을 찾으신 분도 계시구요. 몇 분은 이 수업을 통해서 엄마에 대해 미운 마음, 안 좋은 마음 이런 걸 넘어서서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을 되찾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도서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이예요. 언제 또 이뤄질지 모르지만, 앞으로 은퇴하신 남자분들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다시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은주 선생(가운데)이 주제책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게눈 감추듯 탕수육’이란 글을 쓴 이은주 선생은 “처음 프로그램을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진행하는 동안 이렇게 큰 효과를 가져와서 뿌듯하고 참여하신 분들께 너무 고마워요. 오히려 제가 배운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도 평소 엄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이 수업에 참여한 시간 만큼은 엄마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됐잖아요. 그런 기회를 가졌다는 것 자체로도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시즌1의 주제책은 공지영 작가의 책 『딸에게 주는 레시피』,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등이었고, 시즌 2에서는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을 읽고, 각자 인상 깊었던 구절을 낭독한 후 느낌을 말했다. 서른 분의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감동을 준 이 프로그램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도서관을 대상으로 한 ‘길 위의 인문학, 함께쓰기’ 과정에 공모해 진행됐다.

'부시럭부시럭 냠냠'조에서 만든 '별 총총 약밥'
시즌2 참가자들이 엄마의 기억이 담긴 사진으로 만든 액자를 출간기념식에 전시했다
신인선 참가자 엄마의 대표 음식 '배퉁퉁 여사 포근한 김치국시기'와 계란말이
엄마의 대표 음식 호박만두 만드는 법을 설명중인 강신녀 씨
엄마의 음식을 함께 만들고 있는 참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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