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혜 기자의 공감공간> 천년고찰 흥국사 탐방

바삐 살아도 항상 시간이 없고 무엇엔가 쫓기듯 살다보면 ‘내가 뭐하고 사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회색신사가 내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시간을 그들이 시거 연기로 날려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시의 삶에 지치고 휴식이 필요할 때는 한 템포 느린 공간에서 삶의 쉼표 하나 찍고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느린 공간하면 떠오르는 곳은 ‘절’. 고양시 천년고찰 흥국사를 찾아가본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지축지구를 지나 북한산 국립공원을 향하다보면 ‘흥국사’ 이정표가 나타난다. 비보호 좌회전으로 길을 들어서면 마을길을 지나 흥국사 일주문이 보인다. 흥국사 뒷산은 노고산, 일명 한미산이다. 북한산이 다소 거친 할아버지라면 한미산은 말 그대로 부드러운 할머니다. 할머니가 포근히 안아주는 위치에 흥국사가 자리해있다. 자, 이제 일주문부터 흥국사 여행을 시작해본다.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은 일주문이다. 두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어서 옆에서 보면 기둥이 하나로 보인다 하여 일주문이라 부른다.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흥국사만일회비’라 쓰인 비석과 설명을 적은 안내판이 가장 먼저 보인다. 흥국사만일회비는 1929년에 세운 비석인데 1만일 동안 염불하며 불심을 키운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30년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다. 이 비석에는 고종황제 순비 엄씨와 1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일 기도에 참여한 사람과 재정을 댄 사람들의 명단이다. 

오른쪽의 층계를 따라 몇해 전 새로 만들어진 50여 개의 돌계단을 오르다보면 의도치 않게 묵언수행을 하게 된다. 계단을 다 오르면 동그란 모양의 ‘불이문(不二門)’을 통해 절 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들어올 때는 불이문으로 들어오는데 나갈 때는 ‘해탈문(解脫門)’이 된다. 흥국사에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나가면 해탈에 이른다는 뜻인가 보다. 

곳곳에 숨은 8개의 문화재
흥국사 둘러보기는 문화재 찾기 게임과 유사하다. 경기도문화재, 경기도유형문화재, 고양시향토문화재, 근대문화재 등 8점의 문화재가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절 마당에서 중앙으로 첫 번째 보이는 건물은 아미타불을 모셔서 미타전이다. 이 건물은 1904년 24칸으로 증축된 건물로서 전통 사찰과 다르게 수행공간, 승방, 부엌 등 부속공간이 함께하는 특이한 구조로 ‘대방’이라고도 부른다. 근대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찰건축물이라서 근대문화재 제59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에는 경기도유형문화재인 극락구품도와 경기도문화재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성은 크기는 자그마하지만 나무로 만들어져서인지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극락구품도는 전체를 9등분해 극락세계를 묘사한 그림이다. 

미타전과 마주보는 건물이 흥국사의 본전인 약사전이다. 약사전 좌측에는 나한전(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4호), 우측에는 명부전이 배치되어 있어 ㅁ자 구조로 되어 있다. 나한전에는 고종 때 왕실에서 하사한 돈으로 제작한 6.6m의 문화재 괘불이 보관되어 있다. 괘불은 석가탄신일 행사 때 마당에 걸린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상서로운 절’
흥국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661년(신라 문무왕 원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효대사가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하던 중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려와 이곳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다’하며 절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하고 오늘의 흥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사찰에 남겨진 자료에 따르면 이후 1686년 조선 숙종 때 중창했고, 영조시대에 크게 발전했다. 영조 임금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령원)를 찾아가는 길에 흥국사에서 묵기도 했다. 한번은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흥국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남긴 시가 비문에 전해진다. 

‘조래유심희(朝來有心喜, 아침이 돌아오니 마음이 기쁘구나) 척설험풍징(尺雪驗豊徵, 눈이 쌓였으니 풍년이 들 징조로다)’라는 시구를 편액으로 만들어 하사하고 약사전을 중창하고 이후 왕실의 원찰이 돼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했다고 한다.  

명상길 걸으며 나를 찾는다
천년고찰 흥국사를 둘러보며 문화재도 찾고 마음도 조금 비웠으면 할머니 품에 안기러 뒷산에 올라보자. 장독대를 지나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너른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고 벤치가 여러 개 놓여 있다. 흥국사 전각 지붕 위로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원효봉, 노적봉 등이 봉긋봉긋 솟아 흥국사 최고의 포토존을 이룬다<사진>. 명상하기에 딱 좋은 자리에 앉아서 따끈한 차 한잔 보온병에 담아올 걸, 하는 후회나 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내려가는 길에 한미다원에 들러 6시간 달여서 만들었다는 따끈한 대추차를 마셔야겠다. 

다시 발길을 돌려 명상길에 들어선다. 바위도 있고 경사도 좀 있지만 역시 할머니산이라 푸근한 맛이 있다. 발끝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낙엽을 즈려밟으며 명상길을 걷다보니 재가자 선원으로 사용하는 ‘혜명선원’으로 내려온다. 혜명선원은 일반인 대상 참선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다. 

올해는 흥국사 둘레길이 조성됐는데 A코스 B코스 각각 20분에서 30분 정도 소요된다. 모두 합쳐 1시간이면 충분하다. 명상의 방법 중에는 걷기명상도 있다는데 조용히 산길을 걸으며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흥국사 주지 원용 스님은 “고양시 으뜸 사찰로서 시민들이 누구라도 와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원만성취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사찰을 찾으면 좋은 점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시의 고단함을 잠시라도 잊고 편안해진다면, 그 마음으로 일상에 돌아가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원용 스님의 한마디에 벌써 마음이 평안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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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쉼표를 찾는 곳’ 
흥국사 템플스테이

시끄럽고 바쁜 도시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스트레스가 많아 속세를 떠나고 싶을 때, 일을 벗어나 잠시 쉬고 싶을 때, 가까운 사찰에서 느리게 살기를 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천년고찰 흥국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해보자. 도시에서 5분 거리지만 깊은 산속 사찰을 찾아온 느낌을 주는 절이다. 흥국사 템플스테이는 1박2일 주말 체험형과 주중 휴식형, 당일형, 3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다운 나를 찾는 1박2일
매주 주말에 진행되는 체험형 ‘참 나를 찾아서’는 토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일요일 오전 9시까지 진행된다. 첫날은 템플스테이 복장으로 갈아입고 방을 배정 받은 뒤 3시부터 한 시간 동안 스님의 안내로 흥국사를 돌아본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흥국사의 각 전각과 문화재를 둘러보면서 전통종교로서의 불교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저녁 식사 후에는 108배, 명상, 타종체험을 하게 된다. 

모든 일정은 8시30분에 마치고 새벽예불을 위해 9시에 취침한다. 저녁 9시면 흥국사는 캄캄한 적막에 빠져든다. 와글거리는 도시의 소음과 빛에서 멀어진 호젓한 산사의 밤은 풀벌레 소리와 산새 소리만 가득한 채 깊어간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벽 3시15분이면 새벽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두 번째 날의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 어둠을 밀어내고 스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 절을 하다보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느껴지며 머리가 맑아짐을 경험할 수 있다. 

아침공양을 마친 후에는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다담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 비구니 스님인 서암 스님과 다담을 나눈 참가자들은 답답했던 고민이 많이 풀렸다, 자신을 많이 내려놓으니 마음의 평화가 생겼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한다. 

주중에는 휴식형 ‘몸과 마음에 쉼표를 찾다’가 비슷한 내용으로 진행되며, 당일형 ‘나를 찾는 시간 여행’은 주중에 단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찰안내와 사찰문화체험 중에서 선택해 참여할 수 있다. 

근교에서 경험하는 느리게 살기
흥국사 템플스테이는 외국인 전문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종종 외국인 단체가 많이 찾는다. 한번은 자신은 무슬림이지만 불교를 알고 싶어서 왔다면서 한국의 불교문화를 알아보니 신선했다는 체험자도 있었다. 이렇듯 템플스테이는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나를 내려놓고 나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고민 많은 청춘, 30대 취업준비생, 군장병, 대학생 동아리, 부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개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흥국사 템플스테이를 찾고 있다.

흥국사는 새해맞이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12월 31일 오후 9시부터 2020년 1월 1일 오전 9시까지 진행된다. 설법전에서 철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염주와 연등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하면서 밤을 새운 후 새벽예불을 드리고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마친다. 요란한 새해맞이도 흥겹겠지만 조용히 나를 돌아보면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겠다. 템플스테이는 예약 필수다. 문의 02-381-7980, 010-4451-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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