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원주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배추를 절여서 파는 선배가 있다.

그는 해마다 천 평 밭에 손수 배추모종을 내서 심고, 낫으로 김매기를 하고, 직접 만들어서 몇 년간 숙성시킨 액비로 웃거름을 주고, 행여 가뭄을 탈까 수시로 물을 대고, 은행으로 만든 천연농약으로 해충방제를 한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중노동도 그런 중노동이 없다.

그러나 진짜 중노동은 배추를 수확해서 절이는 일이다. 그는 십일월이 되면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아내와 함께 둘이서 만 포기에 가까운 배추를 절인다. 그런 다음 절임배추 20kg을 택배비 포함 사만 원을 받고서 도시로 내보낸다.

그 모든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차 떼고 포 떼고, 그의 손에는 칠백만 원 정도가 들어온다. 누구는 목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반년에 걸친 고난의 행군을 생각하면 참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에 올해 시중 배추 가격이 얼마인데 절임배추를 통배추보다 싸게 파느냐고, 가격을 더 올려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그는 단골들과의 약속이라며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도시 사람들은 농부의 삶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김장비용만을 따지며 울고 웃는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는 건 수많은 농민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는 이야기이다. 집집마다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김장하는 데에는 그렇게 큰돈이 들어간다고 할 수 없다. 가족들이 일 년 내내 먹을 양식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농부들은 김장농사를 지어서 일 년을 먹고 살아야 한다. 김장채소가 헐값에 풀리면 도시 사람들은 반색하며 즐거워하겠지만 농부들은 피눈물을 머금고 밭을 갈아엎어야 하고, 김장채소가 비싸지면 내다팔 작물이 시원찮아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아야 한다. 설사 흉년에 운 좋게 대풍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농민들은 원주의 선배처럼 비싼 값에 내다팔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농부들은 풍년이 들어도 가난하고, 흉년이 들어도 가난할 수밖에 없다. 원주의 선배는 고추모종 오천 주를 심어 유기농 고춧가루를 팔기도 하는데 올해는 고추농사가 잘 되어서 사백만 원을 손에 쥐었다며 좋아하였다. 하지만 고추농사는 그 어떤 농사보다 힘들다고 정평이 나있다. 도시 농부들은 고추모종 오십 주만 심어도 힘들다고 앓는 소리들을 하는데, 오천 그루의 고추나무에서 고추를 따고 씻어서 말리는 일은 그야말로 뼈가 녹는 일이다. 그런데도 매출이 사백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사백만 원도 이런저런 농사비용과 부대비용을 빼고 나면 실제 이익은 먹자고 들 것도 없다.

그래도 농부들은 해마다 농사를 짓는다. 언제인가 빛 볼 날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농사가 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본 농부들은 이해득실을 떠나서 사명감으로 농사를 짓고,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올 겨울 김장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농부들 생각을 하면서 김장채소의 가격을 따지기 보다는 왜 농부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지 질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질문들 앞에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답을 해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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