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귀종의 경제칼럼>

[고양신문] 영화 <조커>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악당의 출현에 관한 얘기다. 선량하지만 고독하고 불우한 주인공이 악당으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이 안타깝게 전개된다. 이 우울한 영화의 배경에는 불평등의 문제가 깔려있다. 악인으로 변신하기 직전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개 같은 코미디였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경제학 분야에서는 드물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여기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자본이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상속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월급쟁이라도 부모로부터 건물이나 주식 등의 자본을 물려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경제력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는 게 그 주장의 핵심이다.

피케티는 전체 가구를 상위 10%, 중위 40%, 하위 50%의 비율로 나누고 소득과 자본의 분배 상황을 살펴봤다. 우선 소득은 분배가 편중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유럽의 경우 상위 가구는 전체 근로소득의 25%를 차지하고, 중위 가구는 45%, 하위 가구는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본은 심각하게 편중됐다. 10%의 상위 가구가 전체 자본의 60%를 가지고 있었다. 중위 가구는 자본의 35%를 차지했고 나머지 50%의 하위 가구는 겨우 5%의 자본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자본의 편중이 더 심해서 상위 가구가 70%, 중위 가구가 25%, 하위 가구는 단지 5%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케티 주장에는 많은 비판이 따랐다. 그는 순금융자산(=금융자산-금융부채)과 실물자산의 합계인 순자산(net worth) 지표를 자본으로 간주했다. 자료수집 상의 제약 때문이었다. 그런데 순자산에는 주택과 토지가 포함되고 그 비중도 매우 높다. 생산 활동과 관계없는 주택과 토지가 어떻게 소득보다 수익률이 높은 자본일 수 있냐는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자본이든 순자산이든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피케티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다. 순자산은 순금융자산, 토지, 건설자산(주택+상업용), 기타 설비자산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의 GDP 대비 순자산은 2013년 7.6배에서 2018년 8.2배로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8.2배를 쪼개면 GDP 대비 순금융자산은 0.2배, 토지는 4.4배, 건설자산은 2.7배, 기타 0.9배다. 토지 비중이 가장 높다. 여기서 토지는 대부분 건물에 부속된 것들이다. 강남의 비싼 건물이나 아파트에 부속된 땅을 생각하면 된다. 생산과는 하등 관계가 없지만 위치적 희소성에 의해 가격이 매겨지는 불로소득의 원천, 바로 지대(rent)를 의미한다.

한국의 GDP 대비 순자산과 토지 비중은 8.2배와 4.4배라고 했다. 이는 영국의 5.3배와 2.7배, 프랑스 5.6배와 2.4배, 일본의 4.8배와 1.7배 등에 비해 너무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순자산 쏠림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상위 10%의 국내 가구가 42%의 순자산을, 40%의 중위 가구가 47%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50%의 하위 가구는 11%만을 가지고 있다.

주택이나 건물에 속한 땅은 주인의 노력이 아니라 도로나 병원, 학교 등의 주변 시설이나 제3자들의 활동에 의해 가치가 올라간다. 주변 시설이 파괴되지 않는 한 공간의 가치는 계속 유지된다. 하지만 그 땅은 소수가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상속한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저소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은행대출을 받아 비싼 공간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후천적인 기회마저 점점 줄어든다.

피케티는 자신의 책에서 불평등과 경제력 격차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불평등의 이유가 불분명하고, 게다가 세습된다면 선량한 사람들 중 다수가 악행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조커’로 변신할 수도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소득이 계속 줄어드는 디플레이션 터널로 가는 중이다. 자본이 편중되는 사회, 한정된 공간의 땅을 차지하는 능력이 빈부를 나누고 고착시키는 사회는 점점 더 위험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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