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신문] 북한이 공언했던 협상 시한인 연말을 앞두고 요즘 북미 간 신경전이 거칠어지고 있다. 북한은 연말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해 미국이 양보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압박하고 있고, 미국은 북한이 협상판을 박차고 나가 도발을 할 경우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며 위협하고 있다. 북미협상이 파탄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북한은 협상을 포기할 경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재개할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또한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도발할 경우 강경한 대응으로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보여주려 할 것이다. 북미가 이처럼 강대강 대결로 치닫는다면 1994년 제1차 핵위기 때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1994년 제1차 북한핵 위기

1994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6월에는 핵 연료봉 봉인을 파기한 후 8000여 개의 연료봉을 교체해 플루토늄 추출을 시도하면서 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즉각 영변 핵단지를 폭격하기로 결정하고 군사행동을 시작했다. 페리 국방장관은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을 한반도에 배치하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를 통해 전폭기를 동원한 영변 폭격을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했다. 그해 5월 한미연합군사령관 게리 럭 장군은 페리 장관의 명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전쟁 계획을 수립하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국방부에서는 페리 장관을 비롯해 존 살라카시빌리 합참의장 등 미군 최고 수뇌부들이 게리 럭 장군의 한국전 계획을 최종 검토했고 그 결과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전쟁이 시작된 뒤 3개월 이내에 미군 사망자가 5만~10만 명, 한국군 사망자는 최소 50만 명, 한국 민간인 피해자 수백만 명, 재산 피해규모는 1조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한번 구르기 시작한 전쟁의 시계는 멈추질 않았다. 북한은 UN 안보리 제재에 대해 전쟁이라고 반발했고 미국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게리 럭 장군은 6월 16일 국방부로부터 병력증강 결정을 통보받고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의논했다. 그들의 결론은 주한 미국인들을 빠른 시간 내에 소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이니 대사는 즉각 한국에 놀러와 있던 자신의 세 손자들부터 한국을 떠나도록 조치했다.

전쟁의 시계를 멈추게 한 것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방북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6월 15일 평양을 전격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한 후 “북미 회담을 재개하고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긴박한 상황을 감안해 카터는 평양에서 CNN 방송에 출연해 “지금 필요한 조치는 장기간 지연된 북미 회담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 계획이 중단된 것은 카터의 중재 때문이었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미군의 폭격 이후 발생되는 인명과 재산 손실이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여서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이다. 고민에 빠진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과 다시 협상할 것을 지시했고 결국 제1차 북한 핵위기는 북미 간 ‘제네바 합의’가 맺어지면서 해소됐다.

전쟁을 막기 위한 절실한 노력 필요

제1차 핵위기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피해는 얼마나 될까? 아마 94년 당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그때와 다르게 다량의 핵탄두와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자국 내에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수도권에 23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밀집돼 있어 북한의 방사포 공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94년 당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한이 12시간 이내에 5000여 발의 포탄을 발사, 서울이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재산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됐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등 원전이 밀집되어 있는 위험 지역도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다. 원전에 미사일 공격이 가해질 경우 그 피해는 회복 불능의 방사능 누출, 인근 부산·울산지역 주민들의 인명 손실 등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게 확실하다.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은 상상하기 어렵다. 합리적인 지도자라면 수백만의 인명 손실과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손실이 뻔히 예상되는 무모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 와있는 미국 민간인들의 숫자가 20여만 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러나 전쟁은 합리적 이유와 과정을 거쳐 발발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한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이달 중순 한국을 방문한다. 비건은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한 실무책임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문재인 정부는 절박한 마음으로 스티브 비건이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만나 미국의 전향적 입장을 전하고 북미협상의 동력을 다시 살려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 접점을 찾아내 중재안을 마련한 후 양측이 이를 수용하도록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에게는 비핵화의 전체 청사진과 일정을 개괄적으로 제시하되 먼저 영변 핵단지의 영구 폐쇄를 실행하도록 하고, 미국에게는 상응하는 조치로서 경제제재 해제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협상을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듯이 한반도 문제가 안 풀릴 경우 가장 잃을 게 많은 대한민국의 문재인 정부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북미협상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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