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T. S. 엘리어트는 《황무지》에서 노래했다. 신생(新生)의 고통을 표현한 이 싯구는 이후 다양한 의미로 전이되고 확산되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말은 시어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누구들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으랴. 정말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 잔인함을 전세계로 퍼뜨린 것은 당연히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인들의 손과 발이 묶였다. 사람들의 손과 발이 묶이자 경제도 문화도 예술도 묶이고 말았다. 정치라고 다를쏘냐? 4월 15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일인데, 후보로 나서는 사람들도 그들을 돕는 사람들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야말로 깜깜이 선거가 예상된다. 그 와중에도 정당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가 되도록 이합집산과 온갖 묘수(?)로 선거판을 더욱 혼란스럽게 흔들어대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치를 생각해본다. 전세계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이 시기에, 그리고 정확한 전망조차 불투명한 시기에 그 무엇보다 거대한 비전과 위대한 전환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정치영역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온갖 논객들의 찬란한 사상이 꽃피웠듯이, 오늘날과 같은 대혼란기야말로 위대한 정치인이 등장할 시기이다. 지금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누구보다 치열한 사유와 비전으로 유권자들 앞에 서야 한다.

1919년 대한민국이 출발한 이후 2020년이 되었으니 우리는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100년에 걸맞는 백년지대계가 필요하다. 이는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국가운영에 대한 총체적 검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교육에 대한 비전, 노동에 대한 새로운 전환, 평화와 통일을 맞이하는 전세계적 연대, 지구적 생태에 대한 급진적 실천을 포함한다.

총선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자리이다. 그렇다면 총선에 임하는 정치인들은 그에 값하는 각오와 비전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비록 지역에서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하지만, 국회의원은 지역문제를 해결하라고 뽑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국회의원이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아니다. 국회의원의 자리는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미래를 법률적으로 마련하며, 그에 대한 예산을 합리적으로 집행하도록 견제하는 자리이다. 전세계적, 국가적 비전이 없는 국회의원 후보는 그 자체가 자격미달이다.

총선은 지역의 일꾼을 뽑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일꾼을 뽑는 자리이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지만 우리 지역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나라를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기관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의 첫 번째 임무는 지역구 관리가 아니라 국가적 비전의 제시와 이를 실제적으로 실현할 법률을 연구하여 입법하는 것, 그를 위해 지역구를 넘어 같은 비전을 꿈꾸는 정치인들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이다. 지역이나 지방의 발전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도지사나 시장, 도의원이나 시의원의 임무이다. 국회의원이라면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고 재원을 마련해주면 된다.

고무신 한 켤레, 막걸리 한 사발로 표를 얻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궁핍모드로 시장투어를 하는 것도 남세스럽다. 땅값이나 집값을 올려주겠다고 헛공약을 남발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신물이 난다. 무릇 국회의원쯤 되려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그러려면 무엇이 바뀌어야하는가?”하는 근본 질문에 깊이 있는 성찰과 대답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에게 위대한 정치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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