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최창의

최창의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 행복한미래교육포럼 대표

[고양신문] 사랑하는 아들아,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될 줄은 미처 몰랐구나. 처음 혼인할 예비신부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그저 기쁜 마음만 앞섰지.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고 막상 결혼 날짜가 눈앞에 다가오니 다르구나. 지난날 못 해준 일만 생각나고 들려주고 싶은 말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모아 진심 다해 편지 한 장 쓰려고 한다. 다른 이들이 읽는다면 세상의 보통 아버지들이 혼인길에 들어서는 아들에게 쓰는 회한의 연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아들을 키우면서 후회되는 일이 있다. 다름 아니라 어린 시절에 곁에서 자주 돌보아 주고 놀아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곤 한단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네가 어렸을 때는 살기가 어렵고 시대도 격동기라서 자식 돌보기보다 바깥 일에 더 치중한 것 같다. 네가 첫돌을 맞을 때만 해도 그랬다. 가장 기쁜 날인데도 아버지가 전교조 활동으로 직위해제 되는 바람에 양쪽 집안 할머니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단다. 그뿐 아니라 휴일이면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집회에 나가거나 사람 만나느라고 놀이공원 한 번 제대로 못 다녔지. 지금 돌이켜 보면 가슴 아프지만 그 때는 우리 사회 잘 되는 일이 우선이라는 의식이 강했거든.

아들이 어렸을 때 몇 장면도 떠오른다. 너는 키가 작았지만 건강하게 자란 편이라서 다소 부산스러울 정도로 움직임이 많았지. 시골 고향집에 내려갈 때면 할아버지 손을 잡고 둥개둥개 장단에 맞춰 몇 시간이고 다리 춤을 추곤 했어. 또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안방 건넌방으로 뛰어다녀서 다리 부러질까 봐 걱정도 했지. 네 살쯤에는 마을길에서 놀다가 없어져서 이름을 불러대며 온 골목과 시장까지 찾아 헤매는데 가슴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자식을 키우면서 애타는 부모 심정을 알고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 느꼈지. 그래도 너는 친구들과 싸워서 우는 일 없이 주엽동 홍길동이라는 별명처럼 자유로우면서도 활기차게 자라 주었지.

그렇게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흔히 말하는 사춘기가 되었을 때는 어려운 고비도 있었구나. 중학생이 되자 유달리 반항심이 커지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려 해서 마찰이 생기곤 했지. 언젠가는 말대꾸를 하다가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 집 밖으로 내쫓기기도 했어. 눈발이 내리던 날 울면서 나가는 너를 따라다니다가 다시 데려오길 잘 했지 싶다. 그 때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니. 그렇게 부자 사이에 부딪치고 깨지면서 네가 고등학생이 될 즈음 아버지는 확고하게 생각을 바꾸었다. 아들이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는 태도를 갖게 되었지.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편안해지면서 너는 너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되더구나.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인생의 기로가 되는 중요한 결정이 있었지. 다가올 미래에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하는 진로 문제였단다. 그 때 너는 실용음악을 전공해 노래를 하겠다고 했지만 참 고민이 많았어. 과연 노래로 밥을 먹고 살만큼 소질이 있는가, 그리고 삶의 전망이 있는가 하는 걱정이었지. 세상을 좀더 살아본 나로서는 그 길이 아무래도 어렵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어. 하지만 너는 한번 정한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며칠 씨름 끝에 결국 음악으로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지.

실용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뒤 대학에 떨어져 재수까지 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은 대견했어. 그 강한 의지로 마침내 대학 공부를 마치고 군대도 연예병사로 다녀오면서 대중음악인로 성장하게 되었지. 그래서 보컬 전공자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음반을 내고, 이제는 아예 작곡, 편곡자 직업인이 되었구나. 나는 아들이 음악을 해 오는 과정에서 늘 믿음을 갖고 응원했단다. 그것은 갑자기 반짝스타가 되거나 뜨지 않더라도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달라지고 나아지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야. 그런 태도와 열정이 앞으로도 인생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원천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제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마지막 잔소리를 하며 마쳐야겠구나. 러시아 속담에 “싸움터 나갈 때는 한 번,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어. 그만큼 혼인은 인생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대사라는 것이지. 지금까지 혼자 인생을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두 사람이 손 맞잡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야. 그러니 더욱더 자신을 성찰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마음을 너른 바다처럼 키워야겠지.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늘 예민한 감각을 갖고 아프고 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는 음악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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