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버들과 말똥게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건강한 장항습지의 모습.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 고양시청 주차장에 들어서면 문예회관 건물에 내걸린 커다란 현수막과 마주친다. 경기도에서 진행한, 거액의 예산이 걸린 공모에서 고양시가 제출한 ‘한강하구 생태‧역사‧관광벨트 조성사업’이 1위에 선정된 것을 자축하는 현수막이다. 사업계획의 첫 머리는 한강하구의 뛰어난 생태적 가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모두의 예상처럼 국내 유일의 기수역 생태계를 품고 있는 ‘장항습지’가 거론되고 있다.

장항습지는 말 그대로 고양시의 간판스타다. 생태, 환경, 관광 등 거대도시 고양의 질적 가치를 논하는 다양한 담론에서 장항습지는 늘 단골로 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항습지는 한참 전부터 중병을 앓아왔다. 고양신문은 수년 전 지역에서 생태모니터링과 환경운동을 펼치는 다수의 활동가들로부터 육지화, 쓰레기 퇴적, 생태교란종 위협 등 장항습지가 다양한 해결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후, 수시로 현장을 취재해 관련기사를 올려왔다.

하지만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시민들의 관심을 모아내지도 못했다. 최근에 장항습지를 뒤덮은 생태교란종 가시박의 실상이 중앙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여기저기서 뒤늦은 대책마련에 부산한 모습을 보며 지역신문의 역량과 한계에 자괴감마저 느껴지는 요즘이다.
 

가시박에 점령당하고 쓰레기가 뒹구는 장항습지 일부의 현재 모습.


그렇지만 남겨진 과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정책의 실천을 감시하는 것은 여전히 지역언론의 몫이리라. 그래서 다시 촉구하려 한다. 한강하구 습지보호구역의 관리책임이 있는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의 생태보고를 지켜낼 1차 책임이 있는 시 환경보호과는 하루 빨리 구체적 협의 테이블을 마련해 장항습지에 대한 종합관리대책을 제시하라.

물론 환경청와 고양시도 관리대책을 당장 추진하지 못하는 사정과 고민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정이 충족되기를 팔짱 끼고 기다리기에는 장항습지의 현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다.

섭공호룡(葉公好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시대 섭공이라는 사람이 평소 용을 사랑하는 애호가를 자처하며 다녔지만, 막상 용이 섭공을 만나러 찾아가자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쳤다는 것. 실체와 괴리된 허상, 그리고 그 허상을 자신의 욕망에 맞춰 포장하는 것에만 익숙한 인간의 위선을 지적하는 이야기다.

장항습지는 고양시민들에게 ‘섭공의 용’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소중하게 여긴다며 너도나도 사랑을 고백하지만, 정작 망가져가는 민낯과 대면하기를 하나같이 회피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 이상 장항습지를 고양시민의 욕망 속에만 존재하는 신기루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훗날 고양시를 알리는 책에 ‘한강 하구 고양시 구간에 장항습지라는 아름다운 생태 보고가 잠시 존재했었다’고 기록할 순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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