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대표 음식거리 애니골을 가다>

고양시 애니골 카페촌의 역사와 함께했던 일식집 ‘관훈하우스’가 사라진 자리에 지금은 빌라단지가 들어섰다.

근래 대형식당 문 닫은 자리
땅 쪼개 개발하는 방식으로
빌라 1000여 가구 들어서


업종단순, 흡인력 부족 지적도
빌라 들어서면서 민원 우려
“시, 관광자원활용 모색했으면”


[고양신문] 한때 경기북부권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촌이자 식당가였던 고양시 애니골이 위기를 맞고 있다. 애니골을 대표했던 라이브카페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최근엔 빌라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카페 거리의 정취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현재 애니골은 3~4년 전과는 많이 변한 모습이다. 지난 10일 방문한 애니골 곳곳에서 빌라 분양광고 홍보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지어진 빌라가 입주를 맞이하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인부들의 바쁜 손길도 눈에 띄었다. 길거리에서는 입주를 문의하고 설명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현재 애니골 식당가 쪽으로 형성된 빌라촌의 세대수는 1000가구 넘는다. 빌라촌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대형식당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 시기인 4~5년 전부터다. 가게를 직접 운영하던 식당주인들이 땅을 팔고 나가면 빌라 개발업자들이 땅을 쪼개 개발하는 방식이다. 식당을 직업 운영하지 않고 세를 주던 건물주들도 좋은 조건으로 접근하는 개발업자들에게 설득당하는 추세다.

애니골의 터줏대감인 ‘가나안덕’ 바로 옆으로는 10여 개 동이 밀집한 대형 빌라단지가 최근에 건설됐다. 애니골 중심가인 ‘다람쥐마을’ 거리에도 식당이 폐업한 자리에 2~3개의 빌라단지가 건설됐고 지금은 분양이 한창이다.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애니골, 과연 쇠락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봐야할까.

애니골 식당가 지도. 지금도 100여 개의 가게가 영업 중이다.


통키타 카페로 시작된 애니골 명성
대형 맛집으로 이어지며 유명세

지금은 맛집으로 유명한 애니골, 하지만 예전엔 라이브카페로 명성을 얻은 곳이다. 애니골의 역사는 통기타 주점 ‘화사랑’에서 시작됐다.

“대학생들이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면 종착지는 다 화사랑이었지. 술에 취하기 전에 이미 젊음에 취해있던 애들이잖아. 사랑도 하고 시대도 비판하고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던 곳이 화사랑이었는데 이제는 사라지고 말았어. 문 닫은 지 2~3년 됐지.” - 이석재 애니골 번영회장

화사랑은 40년 전인 1979년에 문을 열고 백마역 옆에서 주점을 시작했다. 화사랑이 지금의 애니골로 이전한 것은 1986년이다.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토지가 수용되자 화사랑은 조금 떨어진 곳(지금의 애니골)으로 자리를 옮겨 장사를 시작했고, 화사랑 주변에 식당들이 자연스레 모이면서 카페촌이 형성됐다. 그 카페촌이 애니골이라는 먹거리촌으로 발전했다. 화사랑에서 노래를 불렀던 무명가수들이 나중에 유명가수로도 성장했다. 윤도현, 강산애, 김C 등이 그들이다.

라이브카페와 함께 먹거리촌으로도 유명해진 애니골은 아무나 장사하러 들어오는 곳이 아니었다. 먹거리에 대한 소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만 가게를 내는 곳이라고 식당 주인들은 자부하고 있다. 애니골에서 20년 동안 상호를 바꾸지 않고 장사하고 있는 이광길(옛골시골밥상) 대표는 “대부분 대형으로 운영하다 보니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진 않고선 유지하기 힘든 곳”이라며 “식당 주인들이 직접 레시피를 개발하고 식재료를 연구하기 때문에 체인점 형태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이곳 애니골”이라고 설명했다.

 

애니골 대표 맛집 ‘가나안덕’ 바로 옆으로 대형 빌라촌이 형성됐다.


화사랑, 학골, 관훈하우스, 쉘브루
역사 깊은 가게 모두 폐업

애니골의 쇠락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소비자들의 생활패턴이나 소비문화의 변화가 한몫 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석재 애니골 번영회장은 “유원지와 경양식집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엔 애니골을 근거리 유원지로 생각하고 찾는 분들이 많았다. 유독 애니골에 통나무집이 많았던 이유도 유원지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기 가나안덕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음식 맛도 있지만 훌륭한 조경과 통나무집 인테리어가 더 큰 매력이었다. 지금은 그런 수요가 사라지기도 했고 라페스타, 웨스턴돔, 원마운트 등 시내에 다양한 소비거리가 생겨나면서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애니골은 라이브카페가 거리 분위기를 주도했던 곳이다. 하지만 라이브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밤 10시 이후까지 북적이던 거리는 지금은 해가 지면 거리가 조용하다. 거리에 활기가 없자 저녁장사부터 안 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라이브카페들은 현재 모두 문을 닫은 상태다. 애니골 1호 라이브카페인 ‘화사랑’이 3년 전에 폐업했고, 화사랑 이후 라이브 레스토랑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던 ‘학골’은 화사랑보다 이른 2009년 화재로 폐업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이종환의 쉘브루’도 지금은 문을 닫았다.  

대표적인 카페와 식당도 최근 문을 닫고 있다.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유명했던 카페 ‘숲속의 섬’은 주인의 사정으로 몇 달 전부터 영업이 중지된 상태고, 일식집으로 유명했던 ‘관훈하우스’도 올해 문을 닫았다. 모두 애니골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유명한 가게들이었지만 이제는 사진첩과 블로그 등 추억 속에서만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나마 ‘가나안덕’만이 애니골 식당가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안효승 가나안덕 부사장은 “라이브카페가 사라지면서 업종이 식당위주로 단순해졌고, 그렇게 되면서 흡입력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애니골의 한 식당 주인의 가게 옆에 들어선 빌라를 가르키고 있다. 업주들은 빌라 입주가 시작되면 냄새와 소음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이다.


식당들 변화 모색하기 전에
빌다단지 치고 들어와

문제는 식당들이 문을 닫으면 새로운 소비문화에 적응한 식당들이 모습을 바꿔 개업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빌라들이 대신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빌라단지가 애니골에 처음 들어온 시점은 2010년쯤부터다. 라이브카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학골’의 폐업과 비슷한 시기다.

식당가에 빌라들이 들어서면서 기존에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민원에 시달릴까 걱정부터 앞선다. 빌라가 식당과 딱 붙어있다 보니 소음과 냄새로 항의하는 주민들이 있을 거란 걱정이다. 빌라 난개발로 인해 식당 주변이 어수선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예술인마을, 야시장 등 아이디어
“애니골 브랜드 다양하게 활용해야”

최근 식당 바로 옆에 대형 빌라단지가 들어선 ‘옛골시골밥상’의 이광길 대표는 “빌라가 들어서는 것은 땅주인의 재산권 행사이니만큼 막을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과거 애니골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가게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은 모색해봐야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80~90년대 신촌의 대학생들이 애니골을 찾으면서 애니골이 번성했듯이 지금의 홍대와 신촌의 젊은 예술인들이 경의선을 따라 이곳에 정착해 예술인 마을을 형성할 수도 있다”며 “현재 미분양으로 남아있는 빌라 일부를 지자체가 매입해 예술인 레지던스로 임대한다면, 이곳 상인들은 젊은 예술인들과 함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예술인 마을’을 제안한 이광길 대표는 ‘야시장’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그는 “킨텍스 전시가 몰린 주말에 이곳 식당가의 넓은 주차장을 먹거리를 주로 파는 야시장으로 꾸며보는 것도 방법”이라며 “푸드트럭 등을 섭외해 야시장을 열면 외국인 관광객과 외지인들이 굳이 서울까지 가서 잠을 잘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30년간 명성을 이어온 애니골을 이대로 사라지게 하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라며 “고양시가 애니골 브랜드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줄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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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인터뷰> 이석재 애니골번영회장 / 라이브카페 ‘학골’ 대표

이석재 애니골번영회장 

 "애니골 명성 사라질까 안타까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4년째 애니골 번영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은 장사를 하진 않지만 예전에 애니골을 대표했던 라이브카페인 ‘학골’을 운영했다. 1996년 땅을 매입해 애니골에 건물을 짓고 라이브카페를 운영했다. 건물만 500평 부지였으니 수도권에서 가장 큰 라이브카페였다. 당시 변진섭, 전영록, 녹색지대 등 유명가수들은 모두 주말에 학골에서 노래를 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새해 첫날 화재가 발생하면서 라이브카페는 문을 닫았다.


당시 카페는 어떤 분위기였나.

문을 열던 당시 90년대 후반부터 최고 전성기였다. 워낙 큰 곳이지만 주말이면 자리가 가득 찼다. 라이브카페를 즐기던 사람들이 주로 경제권을 쥐고 있던 40~50대였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하지만 그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라이브카페도 힘들어졌다.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엔 업소 간 과다출혈 경쟁으로 어려움도 있었다. A급 가수들은 보통 30회당 1억원의 선금을 받고 일을 했다. 회당 30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같은 날 다른 가수들도 출연시켜야하다 보니 남는 게 별로 없었지만, 많은 손님이 오갔으니 주변 식당에 좋은 영향을 줬던 것 같다.


현재 애니골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장사가 어려워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애니골을 대표하던 대형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식당들이 폐업한 뒤 요즘 트렌드의 새로운 식당이 들어오면 다행이지만 그 자리를 빌라가 메우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렇게 주변 환경이 변하면 애니골 식당들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시달릴 것 같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애니골의 명성이 사라지기 전에 그 브랜드를 최대한 활용해 봤으면 좋겠다. 상인들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일정부분 지자체가 관심을 가지고 방향을 잡아줬으면 한다. 우리도 자구책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빌라를 더 이상 막기 힘들다면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빌라 난개발을 막기 위한 행정적인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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